Search

대전현충원

광역지방자치단체
대전광역시
기초지방자치단체
유성구
사건연도
가해주체
사건유형
가해
세부사건
장소유형
비석/탑
1 more property

위치

대전 유성구 현충원로 251 내 장군1묘역, 장군2묘역

해설 영상

장소 소개

현충원 장군1묘역 곡대기에서 내려다 본 풍경
현충원은 나라를 위해 공헌한 이들을 기리기 위한 공간이다. 그래서 현충원에는 공헌한 바에 따라 장병묘역, 독립유공자묘역, 의사상자묘역, 순직공무원 묘역 등 다양한 묘역이 존재한다. 장군묘역은 조금 다르다. 특별한 국가공헌 행위 없이도 금고형 이상의 범죄 이력만 없다면 장군이라는 이유만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다. 굳이 한국전쟁이 아니더라도, 군사정권이 오래 집권했던 남한 사회에서 아무래도 장군이라는 위치는 군이 저질렀던 많은 범죄행위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군부 쿠데타나 군이 저지른 학살에 가담했던 이들도 장군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장군1묘역과 장군2묘역을 방문했다. 1묘역에서는 함병선(묘지번호 1-8)과 김창룡(묘지번호 1-69), 2묘역에서는 백선엽(묘지번호 2-555)의 묘를 찾았다(묘지 번호는 묘역의 왼쪽 최상단에서부터 순서대로 매긴다). 3명의 공통점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경력이 있다는 것과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했 다는 것이다.
함병선은 1948년 말 제2연대장으로 임명됐다. 임명 직후에는 여순항쟁 진압에 참여했고 곧이어 제주4.3항쟁 진압을 위해 제주로 이동했다. 제주4.3 기간 중 1948년 말부터 1949년 초까지는 중산간 마을에 대한 초토화작전이 벌어진 시 기였다. 2연대는 제주4.3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북촌리 학살의 주요 가해자이기 도 하다. 연대장 함병선은 무차별적인 살해를 지시했다고 한다. 여순항쟁과 제주 4.3항쟁 관련자 중 대전형무소로 이감된 이들은 산내 골령골에서 죽었지만, 그 죽음에 깊숙이 연루된 함병선은 장군1묘역의 첫 열에 묻혔다.
장군1묘역에 있는 함병선의 묘
김창룡은 한국전쟁 초기 육군본부 방첩대 CIC 소속으로 국민보도연맹원 예비검속을 주도했고, 9.28 수복 후 1951년부터는 현재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전신인 특무부대장으로 ‘부역혐의자’ 학살에 앞장섰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거의 전 과정에 주범으로 가담한 것이다. 김창룡은 이승만이 가장 신뢰한 인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부하에 의해 암살당한 그의 장례는 최초의 국군장으로 치러졌다. 민간인 학살 피해자 주도로 가해자의 묘를 이장하기 위한 국립묘지법 개정 운동을 벌였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매년 현충일이 되면 특무부대의 후신인 안보사령부(전 기무사령부)에서 그의 묘지에 조화를 보낸다고 한다.
장군1묘역에 있는 김창룡의 묘
백선엽은 그가 한 말이 곧 한국전쟁의 공식 기억으로 기록될 정도로 한국 전쟁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1951년 말부터 1952년 초까지 빨치산 토벌을 진행한 백선엽야전사령부(백야사)는 그의 이름을 딴 부대였다. 거창·산청·함양 학 살이 그랬듯 백야사의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도 수많은 민간인이 피해를 입었다. ‘쥐잡기 작전’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작전지역 내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되거나 포로로 잡혔다. 포로로 잡힌 이들이 광주포로수용소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장군2묘역에 있는 백선엽의 묘
이외에도 여순항쟁 당시 덕충동에서 잔학한 학살을 저지른 송석하(묘지번 호 1-93)와 조재미(묘지번호 2-46, 조재미는 구례 산동면에서 벌어진 학살의 주범이기도 하다) 역시 장군묘역에 묻혀 있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국가폭력의 주범이 국립묘지에 묻혔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것이 국가폭력 인 정에 대한 번복이 아니라면 과연 어떤 뜻일 수 있을까. 현충원에는 친일반민족행 위자와 항일운동가가 함께 묻혀 있기도 하다. 현충원과 같은 국립묘지야말로 가 해와 피해를 대하는 국가의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적나라하게 마주할 수 있는 가 장 적합한 장소가 아닐까.

대전, 충북의 다른 장소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