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대전형무소 망루
펜스 너머 남아 있는 망루 하단의 벽돌이 보인다. 현재의 망루는 1971년에 세워졌다. 하지만 망루 하단의 벽돌은 1919년 대전형무소가 세워질 당시의 것으로 추정된다.
대전형무소 터라고 하지만 남아있는 것은 망루뿐이다. 그나마도 한국전쟁 때 있던 형무소는 거의 다 사라졌기에, 서대문형무소를 제외하고 그나마 가장 잘 보존된 형무소의 흔적이라고 한다. 망루 아래 뜯겨져 나간 부분은 원래 담벼락이 있었던 부분이다.
일제강점기 때 사상범 수용을 위해 지어진 대전형무소는 해방 이후부터 1984년 옮겨지기 전까지도 사상범 수용이라는 목적에 충실했다. 일제강점기 때는 안창호, 여운형, 김창숙 등의 항일운동가, 미군정과 남한 단독정부 수립 후에는 제주4.3항쟁과 여순항쟁 관련자 등 좌익사범, 군사독재 시절에는 비전향 장기수와 신영복, 이응로, 윤이상 같은 공안사범 등이 수감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한국 근현대사 전반을 관통하는 사상통제의 산 증인이라 불러도 될 정도다.
한국전쟁으로 국한한다면, 대전형무소는 남북 양측의 학살을 모두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다. 대전형무소에 있던 수감자들이 골령골로 끌려갔고, 북한군은 대전형무소에 우익인사와 공무원, 경찰을 구금했다가 퇴각 전에 학살했다. 대전 형무소 부지의 대부분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나머지는 작은 공원이 되었다.
남아 있는 망루도 원래는 없애려 했지만, 정부가 반공교육의 현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남겨두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남한에 의한 학살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망루 옆에 자유총연맹 대전지부가 사용하는 건물이 있고 건물 뒤편에 위치한 공원에 대전형무소의 몇 가지 흔적이 남아 있다. 대전형무소 담장 일부와 거 대전형무소에 있던 평화의 왕버들, 그리고 북한군이 대전에서 퇴각하기 전 잡아들였던 우익인사를 빠트려 죽였던 우물이 있다. KBS는 죽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위령탑에 반공애국지사영령추모탑이라는 이름을 새겼다.
추모탑을 보면서 만약 북한에 의한 학살이 없었다면 정말 대전형무소 터는 남아있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KBS가 세운 반공애국지사영령추모탑
북한군에 의한 학살이 있었던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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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청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