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고양시 일산서구 경의로 849 내
장소 소개
고양 현충공원 입구. 태극단 반공유적지는 공원 내에 있다.
고양 현충공원 안에 조성된 태극단원 묘역은 반공유적지 제1호다. 묘역 앞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태극단이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고양·파주 지역의 경의선 열차 통학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반공지하조직이며 북한군 점령기인 1950년 7월부터 9월 말까지 게릴라 활동을 벌였다고만 적혀 있다. 태극단이 금정굴 학살의 주요 가해자였다는 내용은 적혀 있지 않 다.
태극단 묘역은 1957년 이승만 정권 때 조성되었지만, 1961년 박정희 정권이 지금의 크기로 확장하면서 반공유적지로 성역화되었다. 54개의 묘지가 있지만, 당시에 실제로 묻힌 것은 5명뿐이었다. 나머지 묘는 규모를 키우기 위한 가묘라고 한다. 묘역에는 박정희의 친필이 적힌 비석도 세워져 있다. 박정희는 쿠데타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반공을 명분으로 삼았다. 이곳은 그 명분을 뒷받침하기 위해 첫 번째로 세워진 반공의 상징적인 장소다.
태극단 반공유적지. 묘지가 여러 개 있지만, 대부분은 가묘다.
박정희가 직접 쓴 비문
이곳에 묻힌 5명의 태극단원은 1950년 9월 28일 북한군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 해병대가 한강을 도하해 이곳과 가까운 능곡에 들어온 것이 9월 20일이었으며, 9월 28일에는 이미 북한군이 모두 빠져나간 뒤였다. 답사를 맡아준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이현옥 사무국장은 정황상 9월 28일 태극단원들이 북한과 싸우다 사망했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태극단원들 역시 금정굴 학살 이후 정부 차원에서 이뤄진 수사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북한에 선무공작을 한다는 이유로 차출되어 수사를 받지 않았다다. 그렇게 학살의 가해자는 이곳에 반공의 상징으로서 기억되고 있다.
수도권 접경지의 다른 장소 보기
강화
파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