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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왜관철교

광역지방자치단체
경상북도
기초지방자치단체
칠곡군
사건연도
1950
가해주체
미군
사건유형
학살
세부사건
폭격/폭파
장소유형
시내/마을
1 more property

위치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882-2

장소 소개

‘북한군의 남진을 막고 북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왜관철교 앞 안내판에 쓰여 있는 문장이다. 사실이다. 1950년 8월 3일, 퇴각하던 미군 은 북한군의 남진을 막기 위해 왜관철교를 폭파했다. 하지만 안내판은 당시 다리 위에 수많은 민간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왜관철교 입구
난간의 모양이 다른 곳이 당시 폭파된 부분이다.
한강인도교 폭파로 수백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폭파 후 70년이 지난 2020년 8월, 한강대교 아래 노들섬에는 한강인도교 희생자 위령비가 건립되었다. 2020년 7월 왜관철교 강변공원에도 평화의 분수가 개장했다. 그렇지만 여기서의 평화는 당시 죽은 이들이 아닌 전적만을 기억하는 평화였다.
2010년 경상북도는 한국전쟁기 낙동강 방어선 일대에 ‘낙동강 호국평화벨트’를 조성했다. 전적비와 전쟁기념시설이 여럿 들어섰다. 왜관철교에는 호국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왜관철교 북쪽에 있는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은 왜관철교 폭파 전시물에 ‘어쩔 수 없는 선택, 왜관철교 폭파’라는 제목을 달았다. 왜관철교 폭파 당시 적의 주력부대는 적어도 24km 이상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지도부는 강을 건너는 피난민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2020년 개장한 평화의 분수
피난민의 안전과 생명이 군사적 목적의 뒷전에 있었다는 사실은 잘 이야기되지 않는다. 작전의 명령권자들은 민간인의 피해를 그저 ‘어쩔 수 없었던 안타까운 죽음’이라는 말로 끝내버린다. 누군가는 다리를 폭파하지 않았으면 더 큰 피해가 발생했을 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 말에는 만약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면 역시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의도가 담겨 있다. 평화 앞에 붙은 호국이라는 수식어는 언제나 전쟁을 전제한다.
왜관철교 폭파를 통해 어떤 평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민간인의 ‘희생’ 덕분에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다는 ‘호국 평화’의 이야기여 야 할까. 아니면 민간인의 죽음을 감수하고서라도 폭파를 감행하도록 만 드는, 전쟁의 끔찍함에 대한 이야기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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