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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포로수용소잔존유적지

광역지방자치단체
경상남도
기초지방자치단체
거제시
사건연도
1952-1954
가해주체
사건유형
포로
세부사건
장소유형
유적
1 more property

위치

거제시 구월동 430-11

해설 영상

장소 소개

포로수용소 잔존유적지 안내판
거제도에 포로가 수용되기 시작한 것은 1951년 초부터이다. 부산에 있던 포 로수용소의 포로 수가 급증하면서 더 이상 수용이 어려워지자 유엔군사령부는 대규모 포로수용소 건설을 구상한다. 제주도의 모슬포도 대상지 중 하나였으나 거제도가 선택된 이유는 육지와 가깝다는 점, 물이 풍부하다는 점, 산세가 험해 관리하기 편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거제 포로수용소는 포로들이 만들었다. 미군이 땅을 고르면 포로들이 자 연석을 정으로 쪼고 다듬어서 건물들을 지었다. 자신들이 갇힐 곳을 자신들이 지었던 셈이다. 광대했던 포로수용소는 현재 몇몇 흔적이 남아 있지만 포로들이 실 제 생활했던 곳은 공장 등 건물이 들어서며 사라져 버렸다. 그럼에도 남은 건물들 은 시간의 풍상을 잘 담고 있었다. 함석 등으로 지어졌던 지붕 등은 없어졌지만 건물의 골격은 그대로 남아 당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당시 법무관실로 사용되었던 포로수용소 건물
거제 포로수용소는 또 하나의 전쟁이 벌어진 공간이었다. 포로들끼리는 ‘친공포로’(송환포로)와 ‘반공포로’(비송환포로)로 갈린 이념의 갈등 공간이었고 미군에게는 포로들을 상대로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우월성을 주입하는 심리전의 공간이었다.
그 사상 심리전의 과정에서 ‘친공포로’(송환포로)와 ‘반공포로’(비송환포 로)로 구별된 사람들의 대립과 갈등은 심화되었고 서로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 상 황으로까지 전개되었다. 놀라운 것은 미군이 포로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사상 교육이 전쟁이 끝난 후 한국사회에서 학교 반공교육으로 부활했다는 것이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권 안보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반공교육 의 시작은 거제도 포로수용소였다.
한국전쟁은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 안에서 또 하나의 전쟁을 재교육해오고 있었던 셈이다.
수월 마을회관 인근 주택의 마당. 마당 의 담장이 포로수용소 특별감옥의 담장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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