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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포로수용소잔존유적지

위치

거제시 구월동 430-11

해설 영상

장소 소개

포로수용소 잔존유적지 안내판
거제도에 포로가 수용되기 시작한 것은 1951년 초부터이다. 부산에 있던 포로수용소의 포로 수가 급증하면서 더 이상 수용이 어려워지자 유엔군사령부는 대규모 포로수용소 건설을 구상한다. 제주도의 모슬포도 대상지 중 하나였으나 거제도가 선택됐다. 육지와 가깝다는 점, 물이 풍부하다는 점, 산세가 험해 관리하기 편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거제 포로수용소는 포로들이 직접 만들었다. 미군이 땅을 고르면 포로들이 연석을 정으로 쪼고 다듬어서 건물들을 지었다. 자신들이 갇힐 곳을 자신들이 지었던 셈이다. 광대했던 포로수용소는 현재 몇몇 흔적이 남아 있긴 하지만 포로들이 실제 생활했던 곳은 공장 등 건물이 들어서며 사라져 버렸다. 그럼에도 남은 건물들은 시간의 풍상을 잘 담고 있었다. 함석 등으로 지어졌던 지붕 등은 없어졌지만 건물의 골격은 그대로 남아 당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당시 법무관실로 사용되었던 포로수용소 건물
거제 포로수용소는 또 하나의 전쟁이 벌어진 공간이었다. 포로들끼리는 ‘친공포로’(송환포로)와 ‘반공포로’(비송환포로)로 갈린 이념의 갈등 공간이었고 미군에게는 포로들을 상대로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우월성을 주입하는 심리전의 공간이었다.
그 사상심리전의 과정에서 ‘친공포로’(송환포로)와 ‘반공포로’(비송환포로)로 구별된 사람들의 대립과 갈등은 심화되었고 서로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 상황으로까지 전개되었다. 놀라운 것은 미군이 포로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사상 교육이 전쟁이 끝난 후 한국사회에서 학교 반공교육으로 부활했다는 것이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권 안보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반공교육의 시작은 거제도 포로수용소였다.
한국전쟁은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 안에서 또 하나의 전쟁을 재교육해오고 있었던 셈이다.
수월 마을회관 인근 주택의 마당. 마당 의 담장이 포로수용소 특별감옥의 담장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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