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남산폐광 학살 안내판. 안내판 왼쪽 길로 올라가면 남산폐광이 나온다고 한다.
청웅면 남산리 폐금광 학살은 1951년 3월에 일어났다. 임실은 전체 면적의 77%가 산지로 여순항쟁 이후 빨치산이 활동하기 좋은 조건이었다. 이런 까닭에 임실은 한국전쟁 전인 1948년에도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주민들이 학살당했다.
한국전쟁 발발 후 북한군 점령 당시 임실은 좌익활동이 활발한 지역이었다. 지역의 우익인사들은 북한군 퇴각 당시 학살되었다. 수복 후에도 이 지역에는 빨치산의 영향이 강했는데, 이에 국군 11사단 13연대가 전주에 주둔하며 경찰과 함께 빨치산 토벌작전을 진행했다. 남산폐광은 바로 주민들이 토벌대를 피해 숨었던 곳이다. 폐광 안으로 물이 흘렀기에 여러 날을 피신해 있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임실호국원 내 위치한 폐광의 입구. 이곳 역시 다른 광산의 입구와도 이어져 있다.
폐광 입구 위에 설치된 안내판. 학살에 대해 조금이나마 언급하고 있다.
군경은 여러 군데로 뚫려 있는 폐금광의 입구를 모두 막고 안에 있는 주민들에게 나오면 살려준다고 회유했다. 살려준다는 말을 믿기 어려웠던 주민들은 나가지 않았다. 결국 토벌대는 굴의 입구에 고춧대와 솔잎을 모아 불을 질렀다. 매캐한 연기로 인해 370여 명이 굴 안에서 질식사했다. 연기를 참지 못해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사살되었다.
남산폐광으로 오르는 도롯가에 진실화해위원회가 세운 안내판이 있다. 방문할 당시에는 여름이었다. 폐광으로 가는 길에 풀이 무성해 올라가기가 어렵다고 했다. 임실호국원 안에 폐광의 또다른 입구가 있다고 해서 그리로 향했다. 산 건너편에는 거대한 규모의 임실호국원이 있다. 6.25참전군인묘역2를 지나 산 방향으로 가면 현재는 막혀 있는 폐광의 입구가 나온다. 함께 세워져 있는 부흥광산 안내판에는 이곳이 ‘6.25전쟁시 동족간 이념대립의 소용돌이 속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곳’이라고 적혀 있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위가 남산폐광의 다른 입구다. 이곳 아래에 200여 구의 유해가 매장되어 있다.
폐광 입구 앞에 펼쳐진 참전군인의 묘비.
학살 이후 일부 유족만이 광산 안에 있는 가족의 유해를 수습했지만, 여전히 많은 유해가 남아 있었다. 폐광에서 나와 호국원과 마주한 산의 경사면을 보면 멀리 위쪽에 튀어나온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그쪽 부근이 폐광의 또다른 입구다. 광산의 주인은 전쟁이 끝나고 다시 광산에서 금을 캐기 위해, 남아 있던 유해 200여 구를 꺼내 입구 인근에 묻었다고 한다.
그곳을 보고 돌아나오면 다시 참전군인의 묘비가 광활하게 펼쳐진 풍경을 보게 된다. 어떻게 학살 피해자들이 묻혀있는 장소 바로 옆에 호국원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음력 2월 경이 되면 마을에 선 시장이 만원을 이뤘다고 한다. 그즈음 학살로 돌아가신 분들의 제사를 지냈기 때문이다.
전남, 전북, 지리산의 다른 장소 보기
여수, 순천
구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