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소개
항쟁하는 마음
여순항쟁 직후 이승만 정권은 군대 내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해 숙청하는 ‘숙군 작업’을 대대적으로 시행했고, 12월 1일에는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그렇게 철저한 반공국가 수립을 위한 길이 닦였다. 피로 얼룩진 그 길의 어딘가에는, 토벌군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밤을 도와 산자락을 걸었을 빨치산의 발자국과 ‘빨갱이’ 가족에게 향했던 멸시어린 시선을 피해 뒷문으로 집을 드나들었을 유족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 70여 년이 지나 다시 여순항쟁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에 그 발자국들을 새기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 발자국을 따라 걷는 여정에서 ‘학살을 거부한’ 마음 한 자락이라도 붙잡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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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순천
끝과 시작
여수와 순천은 가는 곳마다 여순항쟁과 관련해 지자체에서 세운 안내판이 서 있었다. 유족과 지역 시민단체가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 온 결과일 것이다. 군인의 봉기였다는 특성 때문일까.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안내판은 꼭 학살지에만 세워져 있지 않았다. 여수의 인구부 전투지와 순천의 장대다리는 14연대 군인들 이 전투에서 승리했던 곳이다. 어떻게 보면 정부 입장에서는 숨기고 싶었을 장소 에 지자체가 안내판을 세웠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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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순천
구례
빨치산과 현충
위령탑 비문에 여순항쟁의 저항적인 측면이 강조되어 있지는 않지만, 군경에 의한 학살 내용은 분명히 새겨져 있다. 그 위령탑을 총을 든 군인의 조각상이 둘러싸고 있는 듯한 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위령탑은 ‘현충’에 포섭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균열을 내고 있는 걸까. 14연대 군인들은 구례에서 지리산으로 입산해 빨치산이 되었다. 한국사회 에서 빨치산은 언제나 반란 혹은 폭동과 연관지어졌다. 현충과는 정반대의 위치다. 빨치산을 ‘공비’(공산 비적)이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그렇다. 빨치산과 관련한 기억물이 이 현충공원에 서 있는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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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