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서국민학교 안내판
여수에서 본격적으로 학살이 시작된 곳이다. 일제강점기 여수의 동쪽은 일본인들이 주로 살았고 서쪽은 조선인들이 주로 살았다고 한다. 서국민학교 주변에는 오랜 기간 일제의 억압을 받으며 때론 분노하고 때론 서로를 위로했던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인구부 전투에서 여수의 시민군에게 패퇴한 토벌군이 여수 시내로 진입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산을 넘는 것이었다. 여수 도심을 둘러싼 장군산, 구봉산, 종고산을 넘어 온 토벌군은 서국민학교를 점령했다.
지금은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당시 서국민학교에서는 여수의 중심부가 잘 내려다 보였다고 한다. 토벌군은 이곳에 진압사령부를 설치하고 박격포를 쐈다. 여수 시내는 초토화되었다. 불타는 여수 시내의 모습을 담은 여러 사진에서 당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여수를 장악한 토벌군은 본격적인 협력자 색출에 들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국민학교 운동장으로 끌려왔다. 사람들은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인간 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누구라도 손가락질에 걸리면 학교 뒤 밭으로 끌려가 총살되었다. 이른바 ‘손가락 총’이었다.
같은 마을 사람이 원한이 있던 같은 마을 사람을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그렇게 누군가의 생과 사가 갈렸다. 같은 하늘을 이고서 살 수 없는 사람들이 같은 마을에 살게 되었다.
라이프지 기자 칼 마이던스가 찍은 당시 서초등학교의 사진. ‘부역자’ 혐의로 끌려온 사람들이 서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여 있다. 당시와 지금의 산세가 똑같은 것을 볼 수 있다.
라이프지 기자 칼 마이던스가 찍은 당시 서초등학교의 사진. 아래쪽에 모여 있는 남성들이 ‘부역자’로 분류된 사람들이다. 가운데 여성과 아이들은 ‘부역자’가 아닌 것으로 분류되어 집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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