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종산국민학교(현 여수중앙초등학교)

광역지방자치단체
전라남도
기초지방자치단체
여수시
사건연도
1948
가해주체
남한군
경찰
사건유형
저항
세부사건
여순항쟁
군경토벌
장소유형
안내판
1 more property

위치

여수시 하멜로 35

해설 영상

장소 소개

종산국민학교 안내판
여순항쟁 학살의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일본 만주군 출신인 김종원은 여순항쟁 당시 토벌군으로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다. 그는 종산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사람들을 일렬횡대로 세워 놓고 일본도로 목을 쳐 죽이고, 일렬종대로 세워 놓고 총을 쏴 몇 명이나 관통하는지 실험을 했다고 한다.
그의 악행은 여수에서 멈추지 않았다. 거창·산청·함양 학살사건에도 관여했으며, 한국군 부대를 빨치산으로 위장해 사건 조사차 방문한 국회의원들을 기습하기도 했다. 그 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이승만의 비호 아래 승승장구 해 전쟁 후 내무부 치안국장까지 올랐다.
당시 종산국민학교와 바로 뒤 여수여중학교에는 매일같이 사람들이 끌려왔다. 여순항쟁 가담자나 협력자로 분류되면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제대로 된 조사나 재판은 이뤄지지 않았다. 7년, 15년, 사형… 사형을 언도받은 이들은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되거나 만성리, 오동도 등으로 끌려가 죽었다. 징역형을 받은 사람들은 대전, 광주, 목포, 대구, 서대문 등지의 형무소로 보내졌다. 한국전쟁 발발 때까지 수감되어 있던 이들은 형무소 재소자 학살로 숨졌다.
종산국민학교 북서쪽 종고산에서도 무차별적인 학살이 있었다. 종고산 아랫마을에서는 토벌군이 방화, 겁탈 등의 만행을 저지르고 남성뿐 아니라 여성, 아이, 노인을 가리지 않고 살해했다. 지금 그곳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종산국민학교에서도 사람들이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건물이 들어섰다. 교정에는 학교 설립 때부터 있었던 플라타너스가 많았다고 한다. 교문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가면 학살 당시에 있었지만 현재는 베여서 밑둥만 남은 나무가 있다. 학살의 증거들은 사라졌고 기억은 잘린 채로 남아 있다.
당시 끌려왔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을 지금의 중앙초등학교 교정
중앙국민학교 놀이터에 있는 밑둥만 남은 나무

전남, 전북, 지리산의 다른 장소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