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그림 속 연설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 현재 진남통증의학원 자리다.
14연대의 출병 명령을 거부한 다음날, 중앙동 진남관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당시 여수읍의 인구가 8,000여 명이었다는데, 5,000여 명이 모였다니 그 일대의 풍경이 장관이었을 것이다(현재 인민대회장 안내판이 있는 이순신광장은 여순항쟁 당시 바다였다).
광장. 역사적으로 큰 사건이 있을 때 사람들은 광장에 모였다. 해방이 되었을 때 여수 진남관 앞에서 축제가 벌어졌다고 했다. 87년 민주화운동 때에도 시민들은 이곳에 모여 군사독재 타도를 외쳤다. 1948년,이 광장에서 인민대회가 열렸다. 해방 이후 남한의 정치적·경제적 과제였던 반민족 행위자 처단과 토지개혁 등이 결의되었다. 주도세력은 이를 신속히 실행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수 사람들은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역사가 바로 잡힐 것이라는, 드디어 원하던 세상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절실한 희망이었다. 어쩌면 그 희망이 인구부 전투를 포함해 네 차례에 걸친 토벌군의 진입을 막아내는 힘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매년 10월 19일, 이곳에서 여순항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위령제가 열린다. 그렇다면 그들의 죽음에 대한 추모는 그들이 가졌던 희망을 이야기하고 또 계승하려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진남관 망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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