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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부 전투지

광역지방자치단체
전라남도
기초지방자치단체
여수시
사건연도
1948
가해주체
사건유형
저항
세부사건
여순항쟁
장소유형
안내판
1 more property

위치

여수시 연등동 443-11

해설 영상

장소 소개

인구부 전투지 안내판
인구부는 왼쪽으로 구부러진 긴 길, 또는 사람의 목구멍처럼 기다란 길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구부 길은 당시 여수지역 교통의 중심이던 미평서 여수 시내로 들어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경로였다.
14연대의 제주도 출병거부가 여수 시민의 저항으로 확산되자 이승만 정부와 주한미군 당국은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준비한다. 1948년 10월 23일, 대규모의 토벌군이 인구부로 진입했다. 그러나 길이 너무 좁았다. 거기에 왼쪽에는 가파른 사면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밑에 하천이 흐르는 낭떠러지가 있었다. 천혜의 지형을 이용한 시민군의 공격으로 토벌군은 대패했다.
토벌군 사령관 송호성은 전투 중 고막이 터졌다. 송호성은 미처 전투를 피하지 못한 민간인 수십 명을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할 정도로 분노했다. 여수지역 학살의 시작이었다. 다음날 이승만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공산주의자들이 지하공작으로 혼란을 일으켰다”며 “단호한 숙청”을 천명했다. 군대와 한국사회에서 강력하게 전개될 반공정책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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