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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농림중학교(현 순천대학교)

광역지방자치단체
전라남도
기초지방자치단체
순천시
사건연도
1948
가해주체
남한군
경찰
사건유형
저항
세부사건
여순항쟁
군경토벌
장소유형
안내판
1 more property

위치

순천시 석현동 313 순천대학교 운동장 구령대

해설 영상

장소 소개

라이프지 기자 칼 마이던스가 찍은 당시 순천농림중학교의 사진. ‘부역자’ 혐의로 끌려온 사람들이 순천농림중학교 운동장에 모여 있다. 당시와 지금의 산세가 똑같은 것을 볼 수 있다.
가족들은 애가 탔다. 멀리 운동장에 꿇어앉은 사내들이 무슨 일이라도 당할까봐. 미군의 종군기자 칼 마이던스의 사진에서 운동장 너머로 길게 늘어선 흰 옷 입은 가족들의 모습이 마치 하얀 선처럼 보였다. 사진에 나타난 산세는 지금 순천대학교 운동장 구령대에서 보는 산세와 똑같았다.
14연대 봉기군이 장대다리에서 경찰을 물리치고 순천 시내에 들어온 것은 1948년 10월 20일 오후 즈음이었다. 이승만 정부와 미군은 신속하게 진압작전을 진행했다. 토벌군은 10월 22일 순천농림중학교(현 순천대학교)에 진입해 토벌군 사령부를 차렸다.
토벌군은 순천을 진압하며 동시에 좌익 및 협력자 색출에 들어갔다. 순천북국민학교에서 1차로 분류된 사람들은 인근 야산 등지에서 학살되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순천농림중학교 운동장에 집결되었다. 언제 자신을 지목할지 모를 우익단체 청년들의 날카로운 눈빛과 진압군들의 총구가 겨눠지고 있었다. 끌려나온 사람들은 무차별적인 매타작을 당하거나 철모를 쓴 머리로 들이받히기도 했다.
여순항쟁이 시작된 19일로부터 3일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 순천의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여수와 달리 순천은 그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고 한다. 해방의 시간이 너무 짧았던 탓이다. 그럼에도 순천중학교 등지에선 인민대회가 열렸다. 그 짧은 시간에 인민위원회가 결성되고 움직였다는 증거다. 해방 후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전국적인 자치기구가 만들어졌던 것처럼.
1948년 10월 하순, 순천의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붉은 가을 단풍이 물들기 시작할 무렵이었을 것이다.
순천농림중학교 안내판. 운동장 구령대에서 학교 쪽으로 올라가면 안내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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