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14연대 주둔지 앞 가막만. 콘크리트로 덮인 해변은 예전에 일본 공군 전투기의 활주로로 쓰였다. 바다에선 여수지역 보도연맹원들이 수장당했다.
14연대 주둔지는 여순항쟁의 시작점이다. 일제강점기에는 해군기지이자 비행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14연대 주둔지 앞 가막만에 건설된 수상활주로는 밀물이 되면 자연스레 감춰졌다. 군사기지로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1948년 10월 19일, 14연대 소속 병사들이 제주도민에 대한 토벌 명령을 거부 하며 여순항쟁이 시작되었다. ‘동족상잔 결사반대’, ‘미군 즉시 철퇴’라는 그들의 주장과 행동은 여수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항쟁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항쟁은 실패했다. 14연대 병사뿐 아니라 민간인까지 포함해 수많은 이들이 죽어갔다. 이승만정부는 여순항쟁 토벌을 발판 삼아 대대적인 숙군을 전개하는 등 반공 국가 건설을 명분으로 한 탄압을 착실히 진행해 나갔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동자, 농민의 아들이며 국토방위와 인민의 권리를 위해 생명을 바쳐야 한다’며 ‘제주도민에 대한 무차별적인 학살을 위한 출동 명령에 거부한다’는 여순항쟁의 외침은 우리에게 여전히 부인할 수 없는 정당성으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항쟁의 실패가 더 쓰라리게 느껴지는 것일 테다.
14연대 주둔지에는 이후 결핵환자 자활촌이 들어섰다가 지금의 한국화약 공장이 자리했다. 일본군이 쓰던 곳이라 그런지 봄이 되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고 한다. 14연대 주둔지 앞의 대로는 화약 공장이 들어서며 새로 건설한 것이다. 도로명을 공모했는데, 여수 시민사회는 여순항쟁의 뜻을 기리자는 차원에서 ‘통일로’라는 이름을 제안했다고 한다.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지금의 신월로라는 이름으로 정해졌다. 여전히 ‘반란’이라고도 불리는 여순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언제쯤 제대로 된 이름을 갖게 될까.
14연대 주둔지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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