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구례군 구례읍 봉성로 74
장소 소개
안종삼 서장의 동상. 동상 양 옆에 그의 약력과 국민보도연맹원을 석방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1950년 7월 24일 오전 11시, 구례경찰서 뒷마당에는 수백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굳은 표정으로 단상에 오른 안종삼 구례경찰서 서장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나는 지금 내 목숨과 맞바꿔야 할 중대한 결의를 한 순간입니다. 나는 지금부터 여러분을 모두 방면합니다. 국가를 위해 다시 한 번 애국의 기회를 줄 테니 나라에 충성하십시오. 오늘 이 조치로 인해 내가 반역으로 몰려 죽을지 모르지만 혹시 내가 죽으면 나의 혼이 480명 각자의 가슴에 들어가 지킬 것이니 새사람이 되어 주십시오.”
말을 이어가는 그는 상기되어 있었고 그의 머리 위로 한여름의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던 이승만 정부는 전국 각지에서 많은 보도연맹원들을 학살하며 퇴각했다. 안종삼 서장 역시 이틀 전 상부로부터 구금 중인 보도연맹원을 즉각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틀의 시간 동안 안종삼 서장이 어떤 고뇌를 했을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여순항쟁의 여파로 수많은 구례군민들이 무참히 죽어간 시간을 떠올렸을지도.
구례경찰서에 세워져 있는 그의 동상에는 “목숨을 건 안서장의 용단이 ‘피의 보복’으로부터 군민을 구했다”라고 적혀있다. 똑같이 보도연맹원을 석방한 영동의 이섭진 지서장에게는 이러한 국가적인 예우가 없었다. 또한 이섭진 지서장은 전쟁 이후 고초를 겪어야 했다. 신기하게도 안종삼 서장은 전쟁이 끝나고 총경까지 승진했을뿐 아니라, 도의회 의원도 역임했다. 어째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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