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구례군 토지면 직전길 76에서 출발
해설 영상
장소 소개
피아골에 있던 남로당 구례군당 터. 원래 빨치산의 길이라는 이름의 등산코스로 개발하려고 했으나 무산되었다.
피아골,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을 때도 특이한 이름이라고 생각했었다. 혹자는 죽은 이의 피가 골짜기를 붉게 물들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지만 예전 이곳에서 피나무를 많이 재배했기에 붙은 이름이라 했다.
지명의 원래 의미와는 다르지만 이 골짜기에서는 실제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피아골에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때부터로 추정된다. 일본군을 피하거나 그들과 싸우기 위해 깊은 골짜기로 들어온 것이다. 피아골의 여러 사찰이 저항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는데, 피아골 초입의 연곡사도 세 차례 불탔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의병전쟁 때, 그리고 한국전쟁 때. 저항의 근거지를 없애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등산로에서 벗어난 피아골 깊은 곳에선 예전에 여기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여럿 볼 수 있었다. 돌로 쌓은 집터들, 밭으로 쓰였던 곳들…
남로당 구례군당 터는 예전에 등산코스로 기획되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무산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정식 등산로를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다. 피아골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삼홍교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밧줄로 가로막힌 곳을 넘어 올라가면 구례군당 터가 나온다.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아 혼자서 찾아가기는 힘들다. 산을 오르며 땀이 났지만 잠시 쉴 때면 금세 서늘해졌다. 울창한 숲이 한여름의 햇볕을 막아주고 있었다. 예전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한 몸 감출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기도 했을 것이다.
구례군당의 본거지는 커다란 바위암벽을 뒤로 하고 있다. 뒤로는 쉽사리 공격하기 어렵고 앞으로는 피아골 아래쪽을 잘 살필 수 있는 천혜의 지형. 1948년 여순항쟁을 기점으로 이곳이 구례지역 빨치산의 근거지가 되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이승만 정부의 군대와 경찰을 피해 살기 위해 들어왔으나 살아나간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남로당 구례군당 터에는 실제 당시의 흔적과 함께 이를 복원하려 했다가 무산된 흔적이 함께 남아 있다. 경계를 서던 대원움막터, 음식을 지어먹던 식수터, 지휘부가 있던 곳의 대회의장터… 각각의 장소에는 예전에 설치하려 했던 팻말들이 뒹굴고 있었다.
산이 붉게 타서 산홍(山紅), 단풍이 맑은 물에 비춰져서 수홍(水紅), 그 속에 있는 사람도 붉게 물들어 인홍(人紅). 삼홍의 명소라는 피아골. 그 붉은 산을 내려오며 예전 그 어느 때인가처럼 빠르게 능선을 타는 빨치산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피아골 연곡사에 세워진 피아골순국위령비. 비문에는 빨치산과 군경의 투쟁을 두고 ‘군인과 민간인들이 동족의 가슴에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죽어가야 했던 슬픈 역사가 있었다’고 적혀 있다.
구례군당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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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여수, 순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