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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봉

광역지방자치단체
충청북도
기초지방자치단체
청주시
사건연도
1950
가해주체
남한군
경찰
사건유형
학살
세부사건
보도연맹
장소유형
안내판
1 more property

위치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내추옥수길 53에서 출발
(학살지)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옥수리 299-3

해설 영상

장소 소개

오르막 너머가 옥녀봉이다.
옥녀봉에서는 괴산군과 청원군(현재 청주시 청원구) 북일면·북이면 지역의 보도연맹원이 학살당했다. 바로 옆 북이초등학교가 학살된 이들이 구금되어 있던 곳이다. 진실화해위원회 안내판 뒤로 보이는 낮은 벌판이 학살지다. 지금은 밑으로 꺼져 있지만, 당시에는 높았기에 ‘봉’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헌병대가 너비 4-50m에 폭 2-3m, 깊이 2m 정도의 구덩이에 사람들을 몰아 넣고 기관총을 쐈다. 학살 이후 소나기가 내려 그 핏물이 아랫동네까지 흘렀다는 증언도 있다. 어떤 유족은 학살 소식을 듣고 시신을 수습하러 괴산에서부터 먼 길을 왔는데, 들것을 가져오지 않아 낫으로 시신의 머리만 베어 보자기에 싸갔다고 한다. 어두운 밤 가족의 시신을 두고 어쩔 줄 몰라 했을 그들의 마음을 감히 상상 하기 어려웠다.
옥녀봉으로 끌려온 이들 중에는 독립운동가이자 소설 『임꺽정』의 저자로도 유명한 벽초 홍명희의 서모(아버지의 첩)도 있었다. 홍명희가 1948년 월북했기에 그의 가족도 당연히 보도연맹원으로 등록되었을 것이다. 괴산에는 홍명희 생가가 문화재로 복원되어 있다. 홍명희 생가와 옥녀봉을 연결 지어 생각하는 것은, 해방 이후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하에서 어떤 운명을 맞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2021년 당시 옥녀봉 안내판. 오른쪽은 진실화해위원 에서 세운 안내판이고, 왼쪽은 충북유족회가 세운 안내판이다. 안내판 너머의 들판이 학살 현장이다.
2025년 11월 당시 옥녀봉 안내판. 충북유족회가 세운 안내판은 사라졌고, 진실화해위원회 안내판은 휘어진 채 쓰러져 있다.
보수 요청 민원에 대해 청주시는 우선 임시조치 후 2026년에 행정안전부 국고보조금 지원사업을 통해 완료하겠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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