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UN8240을지타이거여단충혼비

광역지방자치단체
인천광역시
기초지방자치단체
강화군
사건연도
1950
가해주체
남한군
사건유형
가해
세부사건
장소유형
비석/탑
1 more property

위치

강화군 교동면 고구리 8-2

해설 영상

장소 소개

을지타이거여단충혼비 입구
한국전쟁 당시 북에서 피난 온 사람 중에는 서북청년단 소속도 많았다. 군 번 없는 군인들이라 불렸던 이들은 좌익세력을 척결한다는 이유로 교동 사람들 을 핍박했다. 좌익혐의자들을 연행하고 고문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주민들의 식량을 빼앗거나 성적인 폭력을 가하는 경우도 많았다. 악행의 정도가 극심해지자 이승만 정권은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군대에 예속시켰고, 미군은 강화가 북한과 인접한 지역이라는 것에 주목해 이들을 정보부대로 편입시켰다.
그렇게 만들어진 부대가 바로 ‘켈로부대(Korea Liaison Office, KLO)’였고, 타이거여단은 켈로부대의 소속 부대였다. 이들은 인천상륙작전 당시 사전 정찰 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부대원들이 사망하기 도 했다.
을지타이거여단충혼비
돌아오지 못한 부대원을 기리는 비석
지금 충혼비가 있는 이곳은 바다 건너 연백, 해주와 물물교환을 하던 곳이었다. 교동에서는 감이 많이 났는데 수확한 감을 배에 가득 실어 연백에다 풀어놓 았다가 가을이 되면 감 판 값을 쌀로 받아오곤 했다고 한다. 정월 대보름에 연백에서 날린 연이 교동의 해안가에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곳도 바다에 면해 있기에 해안선을 따라 철조망이 세워져 있다.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북녘은 갯벌 물이 빠지면 걸어서도 갈 수 있을만큼 가까워 보였다. 당시 같이 음식을 나누며 살았을 사람들은 점점 세상을 떠나고 있다. 과연 예전처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세상이 오게 될까.
철조망 너머 보이는 땅이 북한이다.

수도권 접경지의 다른 장소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