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강화중앙교회
강화중앙교회 언덕에서는 강화의 옛 도심이 잘 보인다. 그렇게 넓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거기서도 좌익과 우익의 세력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강화 경 제의 중심이던 조양방직과 양조장은 우익, 산업조합은 좌익의 본거지였다. 누가 강화를 점령하느냐에 따라 본거지는 구금 장소가 되었다.
강화중앙교회에서 내려다 본 강화 시내
지금은 카페가 된 구 조양방직
강화중앙교회는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강화지역 독립운동의 산실이었으 며, 강화의 근대정신이 만들어진 곳이라고 한다. 현 교회의 전신인 잠두교회는 죽 산 조봉암이 다녔던 곳이다. 교회 1층에는 강화지역의 역사와 관련된 사진들이 전 시되어 있다. 그 중에는 조봉암 선생과 관련한 전시물도 있다.
현재 강화는 당연히 접경지로 여겨진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강화는 중 앙정치권에 속했다. 한강을 통해 서울을 빠르게 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철조망을 걷어내고 생각해본다면, 강화는 한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해 있다. 오랜 분단의 세월은 원래 당연하지 않았던 것을 당연한 것처럼 만들어버렸다.
수도권 접경지의 다른 장소 보기
강화
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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