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구 강화대교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구 강화대교는 매우 좁았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어 깨를 부딪히며 건너다녔을 것 같았다. 다리 아래의 갑곶나루는 서울로 들락거리 는 길목이었기에 왁자하고 번성했다고 한다. 이 근방에 19세기 말 우리나라 최초의 해군사관학교인 조선해방수사학당이 만들어졌다. 성공회도 여기를 통해 한국 에 들어왔다.
1.4 후퇴로 급박하게 강화를 떠나던 군경과 우익단체 등은 강화경찰서, 강화양조장 등에 가뒀던 사람들을 이곳에 끌고와서 집단 처형했다. 아들의 시체를 찾으러 왔던 아내도, 며느리를 찾으러 손주와 손녀 손을 잡고 왔던 할머니도 함께 살해당했다. 길 왼쪽에 작은 전망대 데크가 있다. 그곳에서 학살이 일어났다는 바 닷가가 잘 보인다.
가해자들은 학살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시체가 물에 떠내려가도록 내버려뒀지만, 추운 겨울 얼어붙은 강은 시신을 꽤 오랜 시간 붙잡아 두었다 한 다. 봄이 되고 날이 풀리자 점점이 하얀 옷의 사람들이 강물을 따라 하나둘씩 떠 내려갔다.
다리 옆 풀숲 한편에 강화양민학살희생자유족회 명의의 작은 안내판이 있 었다. 세월의 풍상에 일부 글자는 지워져 있었다.
갑곳 선착장 학살 안내판. 너무 오래 되어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
구 강화대교 전망대에서 바라본 학살 현 장. 다리 밑 강변은 배가 닿던 곳이었다.
수도권 접경지의 다른 장소 보기
강화
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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