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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광역지방자치단체
부산광역시
기초지방자치단체
서구
사건연도
1950
가해주체
사건유형
피난
세부사건
장소유형
뮤지엄
1 more property

위치

부산 서구 임시수도기념로 45

해설 영상

장소 소개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의 모습
이승만이 거주했다는 집은 벽난로와 툇마루가 함께 있는, 서양과 일본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건물이었다. 한국전쟁 시기 1,023일 동안 이곳 은 임시수도 부산의 대통령 관저였다. 집무실과 침실, 거실, 그리고 식당 등 당시의 모습이 잘 보존돼 있다. 당시 서울의 대통령 관저 이화장의 집 기를 그대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승만이 서울을 떠난 것은 전쟁이 터지고 꼭 이틀 뒤인 1950년 6 월 27일 새벽 4시경이다. 그 직전까지 있었던 국무회의에서 정부의 서울 철수를 결정하자마자, 이승만은 경찰 간부 2명만을 대동한 채 기차로 서 울을 떠났다. 대구까지 갔다가 다시 대전으로 올라와 충남도청에 도착한 것이 6월 27일 오후 4시 30분이었다. 국회는 물론 국무위원조차 그가 피난 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관저 내 이승만 서재
서울에 있던 서재의 사진. 서울의 서재 모습 그대로 부산 관저에다 옮겨 놓았다고 한다.
6월 27일 저녁, 충남도청에서 이승만이 서울 시민들은 안심하라는 담화문을 발표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몇 시간 뒤인 6월 28일 새 벽 2시 30분 경 한강인도교가 폭파되었고 다리 위에 있던 800여 명의 시 민과 군인, 경찰들이 폭사했다. 그날 서울은 북한군에 점령되었다. 긴박 한 상황에서 대통령인 그는 가장 먼저 서울을 떠났다. 그리고 그 와중에 자신이 쓰던 물건들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같이 옮겼다. 국민들은 내버려 둔 채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피난 시기에 남긴 흔적을 보고 있자니 씁쓸함을 넘어 화가 치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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