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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공리

광역지방자치단체
경상남도
기초지방자치단체
산청군
사건연도
1951
가해주체
남한군
사건유형
학살
세부사건
미상
장소유형
안내판
1 more property

위치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 214-1

장소 소개

도롯가에 세워진 외공리 학살지 안내판. 안내판 옆길로 올라가면 현장으로 이어진다.
외공리 학살은 아직까지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저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과 몇몇 언론보도로만 사건의 윤곽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1951년 2월 혹은 3월에 군용트럭을 앞세우고 열 대도 넘는 버스가 줄지어 마을로 들어섰다. 버스가 싣고 온 사람들은 모두 외공리 소정골에서 학살당했다. 학살 현장에는 이들이 끌려가면서 떨군 이불과 옷가지, 솥단지와 갓난아기 베개 등 가재도구가 널려 있었다고 한다.
정확한 사건의 진상을 아무도 몰랐으니 유족도 찾을 수가 없었다. 유족 없이 외공리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대책위 차원에서 2000년 처음 무덤 1기에 대한 유해발굴을 진행했다. 발굴된 250여 구의 유해는 제대로 된 무덤을 만들어 안장했다. 2008년에 진실화해위원회 주관으로 다시 유해발굴을 진행했고 280여 구의 유골이 발굴되 었다. 여성과 어린이로 추정되는 유해도 다수 나왔다. 당시 목격자에 따르면 대규모의 학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살과는 다르게 기총소사가 아니라 한 명씩 총을 쏘았다고 한다. 실제 유해발굴 과정에서 발굴된 유골들 중 다수가 두개골에 총알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발굴된 유해 중 인상(仁商), 인중(仁中), 경농(京農) 등이 적힌 단추가 있었는데, 인상은 인천상업고등학교, 인중은 인천중학교, 경농은 서울 시립대의 전신인 경성농립공업학교에서 사용되던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학살 피해자들이 서울 경기지역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된다.
계속 길을 올라가면 나오는 갈림길. 오른쪽으로 가면 된다.
이 길이 나오면 맞게 가고 있는 것이다. 왼쪽 길로 가면 된다.
외공리 학살 현장은 지금까지 방문한 현장 중 가장 외진 곳 중 하나였다. 그래도 도로에서 현장으로 들어가는 곳에 대책위가 세운 작은 안내판이 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도로에서 안쪽으로 들어와 과수원 중앙에 놓인 시멘트 길을 올라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틀어 믿음을 갖고 산길을 오르다 보면 오른쪽에 진실화해위원회 에서 세운 안내판이 보인다.
외공리 학살 안내판
외공리 학살지에 설치된 게시판. 유해발굴 사진이 게시되어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죽은 이들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연유로 끌려왔는지 모른다. 누가 이들을 죽였는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이름 모를 죽음들이 이곳에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시판 뒤편이 무덤이 있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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