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겨울부터 전선이 북쪽에서 유지되면서, 후방 지역에 남은 좌익 및 빨치산 세력을 토벌하기 위한 작전 과정에서 해당 지역에 있던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한국전쟁 전에도 여순항쟁 이후부터 지리산을 포함한 호남지역을 포함해 경남지역에서도 군과 경찰이 빨치산(야산대) 토벌을 벌이며 민간인을 학살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전쟁 발발 이후 1950년 겨울부터 1951년 초 기간에는 11사단, 1951년 겨울부터 1952년 초 기간에는 백선엽야전사령부(백야사)가 토벌 작전을 담당했습니다.
11사단의 작전은 ‘견벽청야’라고 해서 빨치산에 대한 지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주민들을 소개시키고(쫓아내고) 빨치산을 고립시켜 토벌하는 작전이고, 백야사는 토끼몰이식 ‘쥐잡기 작전’으로 지리산 전체를 포위해 올라가며 산간 마을을 모두 불태워버리는 작전이었습니다. 두 작전 다 지리산 일대의 마을을 ‘초토화’시키는 작전이었습니다. 민간인의 생명과 안전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터전을 없애는 것으로도 모자라 마을에 남아 있거나, 빨치산을 도왔을지도 모른다며 그냥 즉결처형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특히 백야사의 경우 작전 결과 사살 6,606명, 생포 7,115명이라는 전과를 올렸다고 보고했는데, 이는 당초 예상했던 빨치산 규모의 3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비무장 민간인이 토벌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죽음은 토벌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체포된 주민들은 광주 포로수용소로 수용되었는데, 겨울 혹한의 추위와 열악한 숙식 등 엄혹한 환경 속에서 많은 이들이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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