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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역혐의 학살

남한 정부를 비롯해 각 지역 인사(공무원, 지주, 경찰, 치안대 등)들이 한국전쟁 당시 적, 즉 북한의 점령을 겪었던 이들에 대해 ‘부역자’라는 낙인을 찍고 학살한 사건입니다. 북한의 남침은 정말 갑작스럽게 일어났습니다. 정부가 대비할 새도 없이 북한이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특히 서울 등 수도권 지역에서 피난을 갈 수 있었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정보를 빨리 얻을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완전히 저버리고 먼저 도망간 이승만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권력자들이 살기 위해 피난을 떠났던 것처럼, 북한 점령을 겪었던 이들도 살기 위해 북한에 협력한 측면이 큽니다. 물론 그중에는 적극적으로 협력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피난을 떠난 이들을 ‘도강파’, 피난가지 못한 이들을 ‘잔류파’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선이 다시 북상하면서 돌아온 ‘도강파’는 ‘잔류파’를 두고 북한 점령을 적극적으로 피하지 않았다는 낙인을 씌웠습니다. 군과 경찰, 지주나 면장, 치안대 등은 자발적 협력은 물론이고 반강제적으로 동원된 행위조차 ‘부역’이라 판단했고, 여기에는 개인적인 원한관계 등이 작동하기도 했습니다. 역시 어떠한 적법한 절차 없이 즉결처형이 이뤄졌습니다. 매우 자의적인 기준으로 생과 사가 갈렸던 것입니다. 부역혐의 학살은 9월부터 1.4후퇴가 있었던 기간까지 북한의 점령을 겪은 거의 모든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경상도 지역을 제외한 전 국토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또한 학살은 협력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이나 친인척까지 포함해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참혹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