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경남

지역 소개

또 다른 격전지

전쟁이 끝나고도 국가는 국민에게 계속 자기증명을 요구했다. 만연했던 학살을 목격한 주민들과 포로수용소 내부의 격렬했던 이념 투쟁을 겪었던 포로 모두 끊임없이 자신의 행동을 검열해야 했을 것이다. 전쟁을 기억하는 대부분의 장소, 특히 정부 차원에서 설치한 여러 기억 공간은 적과 아의 이분법을 그대로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전쟁기 포로를 주제로 삼은 유일한 기억 공간인 거제 포로수용소유적공원 역시 그렇다.
구조라 해변과 장승포 앞바다를 포함한 거제의 여러 장소에서 참상이 있었다. 지금 그곳들의 풍경은 아름답고 평온하다. 아마 70여 년 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용초도에는 당시 포로수용소의 창고나 막사, 급수장 같은 일상 공간들이 남아 있다. 섬에 억류된 신분이었던 포로들에게도 이따금 일상의 평온함은 찾아왔을 것이다. 전쟁의 이분법은 그 풍경을 적과 아가 대립하는 전장으로 만들어버린다. 지금 그곳의 정경에서 우리는 무엇을 들여다보아야 할까.
전문 보기
거제

기억의 주변화

70여 년 전 군과 경찰은 장승포 방파제에 떠밀려온 시신을 수습하는 것조차 금지했기에, 유족들은 감시를 피해 가까스로 시신을 수습해야 했다. 한국사회와 동떨어진 대마도였기에 오히려 시신을 수습하고 추모하는 일이 수월했을 것이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 기억은 여전히 금지되거나 주변화된다. 흥남철수기념 공원이 건립된다면, 이제라도 추모비를 그곳으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
전문 보기
통영(용초도)

섬이기에 가능했던 일들

용초도에는 두 번 포로들이 들어왔다. 첫 번째는 앞서 말한 북한인민군 포로다. 정전협정 이후 그들이 송환된 다음에 국군 귀환포로가 들어왔다. 북한에 포로로 잡혔음에도 끝끝내 남한으로 돌아와 ‘애국용사’라고 불렸던 이들은 다시 북한군이 수용되었던 포로수용소에 갇혀 사상검증을 당했다. 처음 포로가 끌려왔던 1952년부터 국군 귀환포로가 떠났던 1954년까지, 섬 바깥으로는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죽음이 있었을 것이다.
전문 보기
◀ 메인화면